고귀한너 2016. 8. 11. 13:43

세상 뜰 때 / 황동규

 

2016.05.13

올더스 헉슬리는 세상 뜰 때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를 연주해달라 했고

아이제이어 벌린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를 부탁했지만

나는 연주하기 전 조율하는 소리만으로 족하다

끼잉 낑 끼잉 낑 댕 동, 내 사는 동안

시작보다는 준비동작이 늘 마음 조이게 했지

앞이 보이지 않는 갈대숲이었어.

꼿꼿한 줄기들이 간간이 길을 터주다가

고통스런 해가 불현듯 이마위로 솟곤 했어.

생각보다 늑장부린 조율 끝나도 내가 숨을

채 거두지 못하면

친구 누군가 우스갯소리 하나 건넸으면 좋겠다. 
// 너 콘돔 가지고 가니? 
- 시집 『사는 기쁨』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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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다식한 인간학의 거두로 알려진 ‘올더스 헉슬리’는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연구개발과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면서 미래인류의 파멸을 예고하는 예언자적 작품을 남긴 작가이다.
그는 1963년 J. F. 케네디가 저격당하던 날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시, 소설, 수필, 심리학, 철학, 과학, 사회비평 등 무려 30권의 책을 내면서 백과사전적인 해박한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헉슬리는 평화운동에 몰두했으며,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신비주의, 금욕주의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약물로 인한 환각 상태를 체험하고 요가에 몰두했다.
그가 남긴 ‘진리는 시궁창 바닥에 있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