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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숲/장석남..반성도 없이 섰다

고귀한너 2016. 8. 10. 10:16

저만치 여름숲은 무모한 키로서 반성도 없이 섰다/

반성이라고는 없는 녹음뿐이다/

저만치 여름숲은 성보다도 높이, 살림보다도 높이 섰다//

비바람이 휘몰아쳐 오는 날이면 아무 대책 없이 짓눌리어/

도망치다가,/

휘갈기는 몽둥이에 등뼈를 두들겨 맞듯이 휘어졌다가 겨우,/

겨우 펴고 일어난다/

그토록 맞아도/

그대로 일어나 있다//

진물이 흐르는 햇빛과 뼈를 익히는 더위 속에서도 서 있다/

그대로 거느릴 것 다 거느리고 날 죽이시오 하듯이/

삶 전체로 전체를 커버한다 조금의 반성도 죄악이라는 듯이/

묵묵하다/ 

그건 도전이다//

그래도 그 위에 울음이 예쁜 새를 허락한다/

휘몰아치는 그 격랑 위의 작은 가지에도 새는 앉아서 운다/

오르며 가라앉으며 아슬아슬히 앉아/

여름의 노래를 부른다//

새는 졸아드는 고요 속에서도 여름숲을 운다/

城보다도 높이, 살림보다도 높이/

여름을 운다  

-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작과비평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