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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카운티의다리/이근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 이근배

 

2016.07.27

한세상 살다가/

모두 버리고 가는 날/

내게도 쓰던 것/

주고 갈 사람 있을까/

붓이나 벼루 같은 것/

묵은 시집 몇 권이라도//

다리를 찍으러 가서/

남의 아내를 찍어온/

나이든 떠돌이 사내/

로버트 킨 케이트//

사랑은 떠돌이가 아니던가/

가슴에 붙박혀 사는//

인사동 나갔다가/

벼루 한 틀 지고 온다/

글 쓰는 일보다/

헛것에 마음 뺏겨/

붙박힌 사랑 하나쯤/

건질 줄도 모르면서

- 시집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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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 케이트(소설에서의 나이는 52세이지만 영화에서 연기한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는 지붕 덮힌 다리 로즈만을 촬영키 위해 매디슨카운티라는 마을에 당도하여 길을 물으려 어느 집 앞에 자신의 낡은 트럭을 세운다.
과객 킨 케이트는 바로 그곳에서 맨발에 청바지와 물 빠진 청색 작업복 셔츠를 입고 현관 앞 그네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는 중년 여인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은 소설 속 나이 45세보다 한 살이 많았다)를 만난다. 
로버트는 왜 볼품없는 시골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으며 프란체스카 또한 떠돌이 사진작가에게 그토록 쉽게 마음을 빼앗겼을까? 꿈이 있었지만 남편의 반대로 일을 포기해야 했던 여인. 이탈리아 가곡을 틀어놓으면 팝송으로 재깍 바꾸는 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닫는 남편과 아들, 식탁에서의 침묵, 숨 막힐 듯 적요한 집안 분위기…. 그것은 예이츠의 시를 암송할 정도의 감성을 지닌 프란체스카에게 견디기 힘든 일상이었으리라.  
그런 그녀 앞에 늘 그리워하던 고향 이탈리아의 바리를 가본 남자가 나타난 것이 ‘사단’이라면 사단이었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이렇게 작업을 건다. 
‘내가 사진을 찍어온 것, 그 많은 곳을 다녔던 것은 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고, 사랑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렇게 확신에 찬 감정을 느껴 본 것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자신의 꿈을 버리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내면을 일깨워 그녀가 끝내 선택하지 못한 길을 지켜주고 기다리는 남자로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비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