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나희덕

뜨거운 돌 / 나희덕

 

2016.06.13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 있네

그러면 내 스무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 (민음사,2004)
............................................................................................................
세상은 자꾸만 좋아져야 하고, 그 개선은 때리면 울리고 울리면 변하여 그 변함에서 더 좋은 것을 찾아내리라는 변증법을 확신한 적이 있었다. 
누굴 향해 차마 던지지 못했던 돌멩이 하나 이미 바스라지고 식어버려 나 또한 이젠 몇 가닥의 가는 손금만이 그 쥐어 들었던 돌을 화석처럼 추억하노니.  
나희덕의 시는 사진에서 보는 느낌과 다르지 않아 늘 차분하고 얌전하여 읽기 쉽다.
절제와 단정함이 조화를 이루어 ‘외유내강’ 무르지 않고 단단한 질그릇 같지만, 아닌 것은 끝내 아니라 말하는 강단도 느껴진다.